2019이상원화백 신작전 歸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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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 바퀴 Wheel 한지 위에 흙, 유화물감, 먹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164x126cm 2017
이상원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 이상원화백 신작전
歸土 귀토
2019. 4. 3~8.31
이상원미술관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이상원 화백의 지난 4년 여 기간의 작업을 보여주는 신작전.
한지에 먹과 유화물감으로 사실주의 화풍의 회화작업을 하던 이상원 화백이 작품 재료에 ‘흙(황토)’을 사용하여 실험적으로 제작한 신작 80여 점을 전시합니다. ‘흙’은 전시 주제이자 작품의 재료입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상징하는 소재에 흙의 정서를 섞어 향토성을 토해냅니다. 흙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의 근본을 묻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흙, 엄혹한 생을 품은 역설의 전장
이상원화백의 근작 ‘土’연작을 중심으로
이상원화백의 작품은 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직관적인 통찰이 담겼다.
이상원화백은 1970년대 중반에 작품<시간과 공간>을 시작하면서 발밑의 땅에 주목하였다. 작품 속에서 땅은 그 위를 지나가는 수많은 것들에게 등을 내어준다. 초기작품은‘길’위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을 넘어 흙과 눈雪으로 이루어진 땅의 표면을 그리게 되었다. 다수의 연작으로 제작된<시간과 공간>의 주인공은 땅이지만 우리는 그림을 통해 자동차 타이어 바퀴자국을 보게 되었다. 자동차 바퀴는 그림 안에 실재하지는 않으나 분명한 존재감을 지니게 되었다.
바퀴는 인류 기술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땅은 예나 지금이나 생명체가 물리적인 삶을 영유하는 기본터전이다. 인간은 전체 물질세계와 비한다면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외 없이 자연의 일부로서 땅위에서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쟁투하며 살아오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하는 인간 도전의 흔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상원화백의 작품의 기저에 깔려있는 정서는 삶의 투쟁적 측면에 대한 치열한 직면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감정이다.
이상원화백은 작품을 통해 삶의 고통스럽고 불가해할 정도로 모순된 측면을 피하기보다 응전應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거칠고 난해한 구석을 적극적으로 다루고자 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초기작을 통해서는 그리기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세부로 이루어진 화면을 구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들여 완성한 밀도 높은 화면을 응시하면 마치 자연에서 인간이 그러하듯 고된 장애물을 극복한 후 맞이하는 희열의 감정마저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작가가 느꼈을 법한 고통과 환희는 관람객에게 전율로 전해진다.
평범하고 남루한 대상을 위풍당당하게 표현한 작품에서는 버려지거나 도외시되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인물화 연작과 귀향 후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자연물 연작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모습을 보기 힘든 벽촌의 백발이 성성한 촌부들이 그렇다. 수탉과 호박과 순무 등의 자연 소재는 전통 문인화에서 다루듯 소소하고 다정한 표현이 아니라 강렬하면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림 안에 들어가 있다.
초기<시간과 공간>연작을 내놓은 지 40년 만에 이상원화백은 땅위에 남겨진 흔적의 장본인인 ‘자동차 타이어 바퀴’를 그림으로 그렸다. 이제는 더 이상 대지 위를 달릴 수 없는 닳고 터진 폐타이어이다. 그리고 그 그림 위를 늘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흙으로 덮었다. 땅, 곧 흙은 배경이길 그만두고 그림위에서 주인공을 감싼다. 폐타이어에서 시작하여 색소폰, 전쟁에 쓰인 철모와 군인용 배낭을 그리고 난 후에도 마지막 순간에 그림들을 모두 흙으로 마무리 하였다.
이상원화백이 지속적으로 표현해 온 작품들이 가진 향토성을 감안하고 대개의 작품의 색조를 ‘흙의 색’이라고 이해하더라도 작품에 실재 ‘흙’을 발라(작품 마무리 시점에 물에 녹인 흙물을 그게 붓으로 칠했으므로 ‘바른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그 존재감을 내세웠다는 부분은 과감함과 직관적인 행위인 측면에서 놀랍다.
인간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human의 어원은 humus로서 흙이라는 뜻이다. humus를 어원으로 하는 또 다른 영어단어는 겸손humble이다. 별도의 설명 없이도 그 의미를 충분히 공간할 수 있다. 영어의 어원과 맥이 닿는 글귀로 ‘중생필사 사필귀토 衆生必死 死必歸土’라는 말이 있다. 예기의 제의중생이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 되기도 하며 생명의 마지막 자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통찰에는 ’역설‘이라는 흥미로운 생의 원리가 담겨있다.
일반적으로 흙은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따뜻하고 푸근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도시가 발달한 현대문명의 환경에서 싱그러운 흙은 멀리 있어도 친근한 존재이다. ‘대지’는 ‘어머니’라는 다른 말로 불리며 모성의 이미지와 중첩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지구를 생명의 모체로, 흙을 개별 생명체를 잉태하는 자궁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흙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동물이 식물을 통해 양분을 흡수하여 생존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지이 가즈미치라는 일본의 학자는 <흙의 시간>이라는 그의 저서의 부제를 ‘흙과 생물의 5억년 투쟁기’라고 하였다. 그는 저서를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책을 요약하면 ‘결코 낙원이 아닌 흙에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살 곳과 양분을 필사적으로 구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한 결과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물의 역사는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말랑말랑한 단어로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흙을 둘러싼 경쟁과 멸종의 반복이라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흙의 시간,후이지 가즈미치]
흙을 모성적이고 모든 생물을 포용하는 순박한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다면 흙이 가진 혹독한 성질과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다종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멀리 떨어진 별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와 달리 실제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단 한순간도 버틸 수 없다거나, 자연 그 자체인 야생의 숲에서 인간은 실제로 온갖 위협에 포위된다는 사실처럼 냉정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상워 화백의 작품은 언뜻 따스하고 정겨운 흙의 감성, 땅의 정서를 표현학 있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현실에 대한 냉엄한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작가가 표현하는 세계상은 선험적이거나 당위적이라기보다는 작가의 경험과 정서에 근거한다. 그러한 작가의 세계 해석을 담은 일련의 작품들의 메시지는 초기작에서부터 일관되었으며 신작 ‘土’연작에서는 행동주의적이면서도 풍부한 은유를 지닌 표현이 등장하게 되었다.
흙을 사물을 표현한 그림 위에 바르는 행위는 마치 표현된 사물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아가 ‘중생필사 사필귀토’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화가가 정성을 들여 표현한 작품은 최종 작업한 흙에 의해 선명도가 떨어져서 마치 흙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인다. ‘土’연작으로 가장먼저 제작한 작품은 자동차 타이어를 그린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동차 타이어는 초기의 이상원화백의 작품에서 흙으로 이루어진 땅을 짓누르고 지나간 존재이다. 한 때 땅위를 달리던 자동차 바퀴는 낡았고, 이제 그 위에 흙이 덮어졌다.
이상원화백이 선택한 또 다른 소재들도 독특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쟁에 사용되는 군용 철모와 군인용 배낭이다. 이상원화백은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전장에서 죽음과 상처를 목도하였다. 그는 특히 실제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군용 철모를 구하기 위해 한동안 오래된 물건을 파는 곳을 찾아 다녔다. 군용 철모를 그린 작품에 이르러 이상원 화백을 설명하는 수식어의 하나인 극사실주의 화가라는 타이틀은 부정확한 것이 된다.
군용 철모를 그린 작품들은 제목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인 화면으로 변모한다. 철모를 표현한 짙고 붉은 색조에 흙이 뒤엉켜져 만들어진 수많은 균열과 철모의 움푹 파인 곳을 표현한 ‘핵’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적으로 그렸을 경우 보다 더욱 극명하게 전쟁의 참혹함을 구현해낸다. 이상원화백은 <시간과 공간>연작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사실적인 표현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인 조형을 선보인 바 있다. 시간과 공간에서의 추상성이 다양한 조형적인 시도와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면,<土-철모>의 구상적 표현에서 추상적 표현으로의 변화는 조형실험이기보다 화백의 기억과 경험에 내재되어 있던 인상과 감성의 표현이 아닐까싶다. 추상화 형식의 일종으로써 중심으로부터 확산되는 형태라든가 크랙의 효과를 통한 표현방식은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土-철모>의 추상적인 표현의 근거는 심미적인 말로나 조형적 실험 또는 보편적이고 막연한 감성의 표현이 아니다. 실재 경험-전쟁-과 그 경험을 매개하는 구체적인 소재-철모-를 달면서 표출되는 감성은 토대의 사실성으로 말미암아 예리하며 생생하다. 작품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술적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다.
흙은 지구상에 인간이 나타나기 수 엇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은 혹독한(생물의 입장에서)환경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지의류와 바위의 사투 끝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흙은 식물과 동물의 사체에 암석의 자루와 진흙이 섞인 것이다. 흙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지만 그 과정은 무엇 하나 쉬운 과정이 없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발생한 생명체는 끝내 흙 속으로 돌아가 다음 생명체를 위한 먹이가 된다. 인류는 약 1만여 년 점부터 농업을 시작하여 흙과의 투쟁을 벌여왔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명들은 멸절되기도 하였다. 모든 생물은 흙에서 양분을 얻고 얻은 양분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흙으로 되돌리지만 현대의 인간은 흙으로부터 자신의 몸으로 들여온 양분을 흙에 되돌려놓지 못하고 있다. 흙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고 하던 투쟁이라고 하던 그 안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운명을 고려한다면 현재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이상원화백은 마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지우듯이 흙으로 그림을 덮어버렸다. 그 중에는 인간의 기술을 상징하는 바퀴가 있고,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힘겨운 생존방식을 가리키는 듯한 전쟁의 증거물들이 있으며, 현실의 척박함에도 불구하고 삶을 노래하고 승화시키려는 애처로운 무용수의 몸짓과도 같은 유려한 색소폰이 있다.
이상원화백의 ‘土’연작ㅇ느 모든 삶은 일어난 곳으로 돌아가니 그 돌아감에 대해 어떤 것도 예외가 없음을 밝히는 것처럼 읽힌다. 그의 작품에서 흙의 정서는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볼 때의 대지의 온화함으로 잔잔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투박함과 몰인정함이 거칠게 작품을 뒤덮은 방식으로 흘러나온다. 결국 화백은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에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권유한다. 초창기 작업에서 그랬듯이 엄혹한 인생에 대한 묵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만의 사실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상원 미술관 학예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