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미술관








이정윤개인전 GREEN 2021.07.01. ~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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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의 판타지를 연출하는 예술 감독 이정윤

 

신혜영_이상원미술관 학예실장

 

관계의 예술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이안 감독, 2013)에서는 주인공 인도 소년 파이가 태평양에 조난되어 겪는 모험 스토리가 펼쳐진다. 환상적인 태평양의 모습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것은 그가 이 여정을 무시무시한 야수 벵갈호랑이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영화 말미에 드러나는 진실은 그의 이야기에 등장한 벵갈호랑이가 사실은 파이 자신이며, 이야기에 등장한 다른 동물들도 그의 어머니를 포함해 모두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재난 속에서 서로 처참하게 죽이고, 죽임을 당한 인간들의 서사가 동물의 이야기로 바뀌면서 전혀 다른 색채를 띠게 되었던 것이다. 파이는 벵갈호랑이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나는 호랑이 때문에 긴장할 수 있었고, 호랑이를 돌보는데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이 여정을 버틸 힘을 얻었다.’

이정윤 작가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하이힐 신은 코끼리’(<Trunk Project/코끼리 연작, 2009~>)에서 파이와 함께 한 벵갈호랑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무서운 호랑이와 달리 천을 주소재로 한 밝고 경쾌한 컬러를 띤 코끼리의 첫인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그러나 거대한 몸짓에 불편해 보이는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의 모습은 언제나 부자유한 상황에서 자유를 찾아 모험을 나서는 만큼 불안정해 보인다.

코끼리는 이정윤 작가의 자기 고백적 형상으로 출발했으나 이내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다양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오브제로 변화한다.(<Round Trip(왕복여행)프로젝트, 2012~>) 이후 작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예술적인 방법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기에 이른다.(<실크로드 프로젝트, 2015>, SNS를 통해 기부 받은 500개의 넥타이로 만든 설치작품) 작품에 다양한 사람들과 삶에 깃든 정체성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면서 공감과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정윤 작가는 전통적인 미술사와 미학의 규정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근거로 하여 존재를 탐색하고 성장시키는 과정 자체를 작업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관계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출발점은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비롯되며 그것을 인식하고 통찰하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에 따라 전개되기에 형식과 내용에 한계가 없다. 조형적 쾌감이 배재되지 않지만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이러한 성격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은 작가가 다루는 재료에 있다. 이정윤 작가는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을 낼 수 있거나 주목을 끌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하지 않는다. 작가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지향하는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재료들을 선택한다. 고정되지 않는 풍선조각, 다른 사람들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한 무명천으로 만든 봉제인형, 실제 사용된 넥타이, 최근에는 유리를 재료로 선택했다. 유리는 쉽게 깨질 수 있으며 투과하는 성질로 인해 이편과 저편의 풍경이 섞인다. 액체인 유리를 원하는 형태로 고체화하는 데는 무엇보다 집중과 균형이 요구된다. 이 재료들은 모두 변화와 불안정에 노출된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재료 자체에 의해 감각적, 무의식적으로 작가의 의도가 전달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언어와 숫자로 규정된다. 우리는 규격화 된 부분 중 일정한 영역에 소속해야만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정주(定住)하지 않은 모습은 그 자체로 이 되고 균열이 된다. 무엇보다 작품을 둘러싼 모든 방식을 통해 변화와 불안정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신바람 난 듯 보이는작가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의아함을 때로는 통쾌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이정윤 작가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작품을 진행한다. 작품을 이루는 물리적 형태만큼이나 작품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계교류에 주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관계와 교류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물질화하기 어렵다. 그것은 정서와 감성의 영역이며 계량화할 수도 없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상의 조회수, 팔로워수가 마치 관계의 양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지만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대체해서 등장한 새로운 관계망이 지닌 민주적인 성격만큼이나 그것에 내포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정윤 작가가 대부분의 작품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연결되는 상호간의 교류는 살아 있는 접촉이다. 그 과정은 개인의 주체성이 반영되는 기회가 되고 개인의 역량을 넘어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을 품는다.

 

현대미술은 수 십 년 전에 이미 거대 담론의 유용성이나 거창한 유토피아의 도래를 꿈꾸는 것에 대해 상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각자 자신의 정서와 관심사에 맞추어 형식을 선택하고 내용을 채워나갔다. ‘예술 작품이라는 영역은 이제 광범위해져서 무용성(無用性)’이외의 어떤 유사성을 찾기 어려워진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용성이야말로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추구할 수 있는 예술이 지닌 유일한 파괴력이자 가치라는 자조 섞인 표현을 부정하기 힘들어졌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무용성은 작품이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꽤 큰 경제적인 대가를 정당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말하듯 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자 열려있는 가능성이다. ‘무용성이라는 언뜻 예리해보이지만 빈곤하기 짝이 없는 무기만이 현대 예술의 핵심가치라고 여기기에 삶은 다채롭고 관계의 가능성은 풍부하다. 이정윤 작가가 그토록 열정적이고 자유롭게 작업을 진행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삶과 관계에 대한 민감성과 긍정성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정윤 작가는 관계의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또한 감독의 예술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을 다양한 기법의 시각예술을 다루는 설치미술가, 타장르와의 협업가, 예술 교육 및 공간 기획가로 소개한다. 그의 작품은 공감각적인 요소로 공간을 점유한 뒤 관람객을 수동적인 감상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초대한다. 현대미술 관람객은 이러한 예술가의 초대에 적극적이며 예술가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조건에 한정되기보다 그것을 넘어 자신의 경험을 대입한다. 그 한 순간 사회의 규범과 의식 속에 고정되어 있던 자신의 주체성을 확장하며 새롭게 창조한다. 사실 협업을 하는 다른 아티스트이건 관람객이건 예술가가 타인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관성 있게 결과를 조정하려는 의도를 포기하면서도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으려 세심하게 노력해야만 질적인 완성도가 뒤따라오는 측면도 있다. 이정윤 작가는 관계와 교류의 힘을 믿음으로써 그런 결정의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것 같다. 따라서 새로움과 교류가 가득한 이정윤 작가의 작업 과정에는 즐거움과 함께 위태로움이 공존한다. 그것은 마치 존재의 총체성, 삶의 총체성을 얻기 위해 분리하고 정돈한 체계를 벗어나서 그 사이사이 알지 못하고 가려진 부분들을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닮아있다. 이정윤 작가는 여행이라는 모티브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여행이 일반적인 의미의 관광이나 경험의 확장이라고 해석되지 않는다. 그의 여행은 머물러 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편안함을 걷어차는 데, 갈등을 무릅쓰고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Green 삶의 총체성 회복을 상징하는 코드

 

2021년 이정윤 작가의 개인전 제목은 <GREEN>이다. 폐쇄적인 상태에서 자신에게 몰입하면서 작업하기보다 주변 상황에 민감하고 교류가 활발한 작가에게 최근 세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부제목인 사라지는 노래, 살아지는 노래-The song for leaving and living’에서 시사하듯이 작품은 생명과 그 생명의 떠나감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작업은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게 되는 시점과 맞물려 이전의 오브제 작업들과는 다른 기법과 결과물로 나타났다. 작가는 색이 있는 판유리에 생기가 사라져 말라버린 식물을 얹고 자투리 유리가루를 뿌린 후 가마에 넣어 이미지를 성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퓨징기법이라 불리는 것으로써 유리와 다른 재료가 섞인 채 녹아서 새롭게 재탄생된다. 정방형의 색유리 위에 이미지를 만들도록 선택되는 것은 살아 있다가, 또는 쓰이다가 거두어진 것들이다. 작업노트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작가는 이 과정 속에서 죽음, 소멸, 사라짐에 대한 종교의식과도 같은 정화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맞이할 준비를 한다.

작가는 초록(GREEN)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서 작업을 진행하였고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가진 함의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유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전시에는 작가 이외의 여러 사람들에 의해 초록을 떠올리고 선택한 사진들로 편집된 동영상과 관련한 생각을 적은 글들이 함께 전시된다. 색상의 명칭인 초록(GREEN)은 한정된 색상을 지시하는 것을 넘어 상황을 묘사하거나,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등 폭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기후변화와 그로인한 재해, 인간이 만들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색상 초록에 한정되지 않는 초록 GREEN’은 이정윤 작가에게 관계의 대상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의식의 확장과 더불어 살아있음의 가치만큼 사라지는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수용의 상태를 표현하는 코드로 사용되었다. 구체적인 형상이 사라진 유리 패널은 모호한 흔적과 아름다운 색상으로 빛나며 삶과 죽음이 섞여 통합된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사람이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진 유리 구조물은 빛의 샤워를 받으며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접촉이 공포가 되고, 모두에게 닥친 위기상황이 취약한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극단적인 생존의 위협으로 작동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이제 생명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사유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무기력에 직면해 있다. 상실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일상이든 생명이든. 그러나 이정윤 작가는 또다시 자신만의 판타지로 현실을 각색한다. 어떤 이야기를 믿을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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