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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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그린룸 어시장 1025
2017. 7. 13(목) ~ 9. 24(일)
이상원미술관에서는 2017년 두 번째 기획전으로 윤석남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했습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윤석남 작가의 작품 중 세 가지 테마의 설치 작품을 선보입니다.
윤석남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경험, 감정,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출발한 여성의 삶에 대한 표현(어시장),
인간의 문명속에서 가차없이 버려진 생명에 대한 연민(1025),
자연과 우주라는 거대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귀함에 대한 표현(그린룸) 등은 모두 작가 주변의 삶으로부터 비롯된 작품들입니다.
윤석남 작가는 다양한 경험들을 돌봄과 사랑의 자세로 맞이하고 작품을 통해 본인이 희망하는 치유의 과정을 걸어갑니다.
삶은 진정 치유와 회복을 필요로 합니다.
윤석남 작가의 서두르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으며, 마디마디에서는 가뿐한 즐거움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통해 우리 존재와 삶에 맑은 바람 한 조각을 맞이하는 시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레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불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에서-
오래된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한국의 동명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되어 익숙하게 들린다. 1993년에 출판된 공지영 작가의 소설 제목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널리 읽혔고 여성문제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낸 작품이다. 경전의 의미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룬 주제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수 없어도 ‘자유로운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라는 점에 있어서 맥락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윤석남 작가의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것은 윤석남 작가의 ‘여성주의’ 관점의 작품 성향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작품과 경전의 연결은 익숙한 구절의 연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작품 세계의 변화와 확장에 대해 살펴보면서 윤석남 작가의 작업 여정이 진정한 자유를 향한 오래된 경전이 일깨워주는 의미에 더 깊이 상응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시장
윤석남 작가(1939~)는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던 중 불혹의 나이(1979년)가 되면서 미술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 사건은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작가는 여느 가정주부와 같이 아내이자 어머니,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당연하게 여겼던 주부의 미덕을 실천하는 일이 점차 주체적인 자아로서 ‘윤석남’ 개인이 사라지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울과 혼돈의 시기를 겪게 되었고,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그림 그리기’라는 자신의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독학에서 늦은 시작,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직업 미술가의 길을 시작하기에 험난한 조건이다.
독학에 늦은 시작,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직업 미술가의 실을 시작하기에 험난한 조건이다. 그러나 윤석남 작가에게 작업을 한다는 것은 기성문화와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느라 잃어버렸던 주체적인 개인으로 실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품의 내용은 오랜 기간 그의 마음에 간직되어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여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표현으로 채워졌다. 그에게 어머니란 모성적 자애와 지혜의 전범(典範)으로써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선 여성의 역할과 의무를 강요당하는 삶의 굴레에서 분노하고 피폐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부장 문화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숨겨지고 억압되었던 보편적 여성의 어두운 현실이 진정한 여성성의 기능성과 함께 작품의 면면에서 흘러나왔다. 또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동료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개인적인 자각은 공동의 자각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윤석남 작가의 작품 세계의 기저이다. 윤석남 작가가 <여성주의> 작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시장, 2003>은 2000년대 작품이다. 전시장 바닥에 놓여있는 100여 마리의 물고기를 아우르고 머리에는 커다란 고래를 이고 있는 여성은 억압받거나 상처받아 위축된 인물이 아니다. 마치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거대한 대양의 수호신과 같다. 물고기를 다스리는 주체로 해석할 수도 있고, 양육을 담당하는 자가 그의 긴 팔을 뻗어 식량을 모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시장>의 모티브는 작가가 자주 찾았던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생계를 위해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강인함과 거침없음에 우악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연민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안에는 펄떡이는 물고기와 같은 생명력도 존재하지만 원초적인 욕망과 두려움들이 부딪쳐 순박하면서도 모질고 거친 것들이 섞여 있었을 터이다. 그 날 것인 인상과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이면에 대한 이해가 합쳐지고 가능성이 상상으로 떠올라 표현된 작품이 <어시장>이다.
작가는 분노와 상처를 드러냄으로 작품을 시작했다. 자기 고백을 통한 치유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발과 연민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의 삶에 대해 깊이 통찰하면서 점차 그가 표현하는 여성은 상처받을 수 없는 존재, 기르고 돌보면서도 군림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가능성으로 표현되었다.
<여성주의>담론은 끝나지 않았다. 현실은 변화했으나 모순은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를 통해 보면 인간사회에서 모순이 사라지기 바라는 것은 순진한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예술가 윤석남의 작품은 모순에서 출발하였고 그의 현실 인식은 순진함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어시장>은 작가의 웅대한 이상을 펼쳐 보인다. 그것은 그의 존재가 서 있는 자리와 그가 바라보는 곳이 처음 있었던 위치에서 서서히 변화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작품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2008>의 1,025는 이애신 여사가 거두어 키우게 된 유기견의 숫자이다. 이애신 여사는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년의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어떤 계획과 의도도 없이 버려진 개와 강아지에 대한 연민이라는 감정을 따라 행동했다. 결과적으로 1,025마리의 유기견을 양육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주는 충격은 놀라울 따름이다. 믿을 수 없는 이 사건을 접한 윤석남 작가는 이애신 여사와 1,025마리의 유기견을 직접 방문하여 목도 하였다. 나무를 깎고 다듬고 채색하여 1,025마리가 넘는 개의 형상을 입체로 만들었다. 우울한 눈동자로 관람객과 눈을 맞추고 있는 수많은 유기견을 재현해낸 작품은 사람들의 비인간성과 그로 인한 비극을 증언한다.
윤석남 작가는 곪아 터져버린 상처를 감싸안는 행위로써 이애신 여사가 보여준 생명에 대한 연민과 모성적 행위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림받은 생명과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되는 생태에 관한 성찰로 이어졌다. 작품의 소재가 변화하는 극적인 계기이며 도약과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은 작가가 외부세계에 진심으로 반응한 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속에 깊이 침잠하고 연마함으로 실현되었다. 이 부분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변화에 시작에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1,025: 사람과 사람 없이>가 전하는 묵직한 감동의 이유이다. 예술이 사회적 치유와 의식의 성장에 기여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 적절한 본보기라고 여겨진다.
그린룸, Green Room
윤석남 작품 세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모성’의 의미는 ‘생물학적 어미’라는 의미로 한정되기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생명을 북돋으며 사랑으로 돌보는 속성’으로 해석 된다.
<그린룸>은 생태적 모성관이 절정으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바리데기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작한 룸연작에는 블루룸, 핑크룸, 화이트룸, 그린룸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그린룸>은 녹색을 주소색으로 하였다. 벽면에 각종 문양을 오려서 형상을 만든 종이 작품을 붙이고 같은 계열 색상의 구슬과 직접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였다. 화려하기도 하고 원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다양한 문양들은 함께 설치된 거울로 인해 신비스러우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공간으로 완성된다.
기존의 작품에서는 관람객과 작품이 일대일오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듯 메시지를 읽어냈다. 그러나 종이와 구슬로 공간을 도포하듯 감싸는 <그린룸>에서 일대일 관계는 사라진다. 관람객은 작가가 구현해낸 공간 속에 초대된다. 이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서 숨 쉬는 환경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녹색 빛깔의 문양 속에는 인간의 형상을 비롯하여 식물과 동물들, 기하학적 형태들이 담겨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지구, 아니 우주가 과연 우리만을 위한 공간인지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작품은 초록의 향연 속에서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일상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고 다투지 않는 존재로 이끌어 간다.
각성과 치유의 과정으로써 윤석남 작가의 작품 활동이 지닌 의미를 ‘자유로운 존재를 지향하는 예술적 삶의 여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작품은 자연스럽게 그 여정의 자취, 흔적이 될 것이다. 서두에 인용한 숫타니파타의 구절은 독립적이고 억압받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채 많이 인용되었다. 자주 인용되지 않는 다른 구절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의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소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정한 자유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윤석남 작가의 여정을 살펴보면 모순과 상처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타인이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의 자세도 필요하다. 더욱이 보편적인 생명과 우주에 대한 사랑을 각성해나가는 여정이라면 그 과정과 지향점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다른 어떤 영역에서보다 가치 있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그 자유가 어떤 표현이든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술은 모순에 직면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비폭력적이고 창조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만나는 사회적 편견이나 이해관계, 권력관계 등의 유혹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예술에서의 자유가 아닐까?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상원미술관 학예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