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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ets_김보섭개인전_연평도의 바위 2016. 9. 29 ~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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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미술관 기획전2016_part 2_두 개의 개인전

The Poets

김보섭_연평도의 바위

2016. 9. 29 ~ 12. 11


이상원미술관은 2016년 가을 새로운 기획전으로 두 개의 사진전을 준비했습니다.

'시인들'이라는 큰 제목 아래 김보섭 작가와 박형근 작가의 전시회입니다.

김보섭 작가는 90년대 초반부터 인천 지역의 사람들과 장소, 문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선보여왔습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연평도의 바위>연작은 2003년에서 2014년 사이에 찍은 작품입니다.

비가 오거나 태풍으로 섬 전체가 물기를 머금었을 때 검은 바위와 대기와 바다를 담은 것입니다.

위험한 작업이었으나 '바위의 힘이 나로하여금 찍게 하였다'라고 작가는 고백합니다.

자연앞에서 자연이 되어버린 듯 일체된 사진가의 모습은 그림속의 풍경으로 들어가 풍경 자체가 되는 산수화가의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로가 2m인 대형 사진인 <연평도의 바위>연작을 통해 흑과 백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감과 감촉과 감성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 사진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미술에서 사진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역동성이 아닐까싶다. 2016년 현재 사진은 큰 의심 없이 고습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은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전시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된다. 사진은 미술 비평의 대상이 된다. 사진 전문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존재한다.

 

사진의 역사를 단순화시켜 살펴보면 19세기 전반에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기술의 발달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탤벗, 프랑스의 다게르가 공식적으로 사진술의 발명을 발표하였으나,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실험과 발명을 했다는 기술(記述)이 존재한다.

 

사진술의 등장이 전통 회화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였다. 서양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이후 회화의 가장 큰 특성이자 소명은 눈에 보이는 외부의 장면을 충실하게 그려내는 것이었다. 원근법은 재현이라는 회화의 목적을 위한 과학적인 토대였다. 신화나 종교의 내용이라도 마치 생생히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꾸며내는 것이 회화가 추구해야 할 목표였다. 사람들은 회화를 통해 신성과 인간성, 역사적 교훈,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의도도니 정치적 효과까지 발휘되기를 요구했다. 회화는 외부세계를 충실히 모방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생각과 염원을 반영하는 이미지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업과 함께 도시가 발달하는 근대가 시작되면서 시대정신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발맞추어 성장하는 과학의 발달은 생활문화 전반을 넘어 순수예술의 의미와 형식에 변화를 초래했다. 변화된 시대의 가치관은 개인주의와 합리성, 실용성을 추구하였다. 논란의 여지없이 사진술은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한 재현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전통 회화는 존재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했다. 추상미술과 회화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의 시발점에 사진술의 등장이 끼친 영향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런데 외부장면을 정확하게 포착하기만 할 뿐 아니라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한 사진은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요소로 인해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진이 등장한 19세기는 사진이 어느 정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의 논쟁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사진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 가록에 유용한 도구 (다큐멘터리 사진과 아카이브의 자료)가 되었고, 상업분야에서도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광고사진). 대중의 일상에는 점점 더 밀착되고 있다(가족사진, 여행사진, 일상의 기록).

이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유럽의 미술대학에 사진학과가 개설되었고 사진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의 전시형태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전시되는 사진의 크기가 대형 캔버스처럼 커지고, 종이위에 인화된 사진으로 그치지 않고 뒤편에 라이트 박스를 설치하여 발광 효과를 낸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액자대신 디아섹(Diasec: 사진을 아크릴과 알루미늄 판넬 사이에 놓고 압축하여 코팅하는 방법)방법으로 사진을 고정시킴으로써 견고하면서도 현대적인 재료의 느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전시하는 방법상의 변화는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 사진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도전에 비하면 단순한 편이다. 사진이란 매체는 사진술이 발명된 후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외부 정경을 자동적으로 포착하는 기록적이고 기술적이고 유용한 도구 일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보여주었다. 본다는 행위와 보여 진다는 것의 심리학적 의미를 찾거나, 영화장르처럼 이야기적 요소를 첨가하여 (변장이나 연극적인 미장센을 꾸며놓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회학적 문제를 제기하였다. 노출시간을 극단적으로 조정하거나, 사진이 찍히는 장소에 특정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실용적이거나 심미적인 효과 이외의 음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진은 출발에서부터 현재까지 쓰임에 있어 짧은 기간 동안 기존의 문화예술과 생활양식의 다양한 요소에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모든 조형예술의 기본적인 요소는 아름다운 형식과 가치를 담은 내용의 조화이다.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예술사진이라 불리는 작품에 이 요소가 존재하는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특징이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존재하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가? 현대미술은 이미 재료와 표현방법에 있어서 한계를 두지 않는다. 다가오는 미래에 과학이 어떤 기술을 예술의 표현수단으로 제시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사진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이후에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고, 21세기 문화는 유래 없이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 ‘감성과 이성과 자각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예술로부터 얻기 원한다. 세세한 내용은 개인의 취향과 문화적 토대에 따라 변형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그렇다.

 

2016년 하반기에 이상원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사진전은 흥미로운 대조와 더불어 시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두 개의 개인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보섭 작가와 박형근 작가는 1990년대부터 개인전을 열었다. 김보섭 작가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속하였고, 박형근 작가는 처음부터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전시의 출판형태는 겉보기에 큰 차이가 없다. 김보섭 작가는 인천이라는 지역에 속한 사람과 공간을 기록하는 가록자로서의 소명을 지니고 장인적인 작업으로 꾸준히 작품을 쌓아갔다. 반면 박형근 작가는 자신의 내적질문을 예술행위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사진으로 진행하였다.

사진이 예술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미술계 종사자를 포함하여 심미안을 갖춘 대중, 그리고 순수예술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대중 모두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동시에 사진작품을 제작하는 사진가는 새로움을 제공하면서도 공감의 대상으로서 가치 있는 작품을 보여주어야 한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진작업에 몰두해 온 두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세계는 독창적이고 의미 있다. [이상원미술관 학예연구실 2016]

 

연평도의 바위

 

김보섭 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충실한 시기동안 마치 동양적인 의미에서 무아(無我)’ - ‘라는 생각이 없는 상태-에 이른 훈련을 한 듯하다.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보면 작가가 배제된 상태로 대상을 투명하게 반영하려고 시도하는 작가의 철저한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연평도의 바위> 연작은 과학적인 기술과 과정을 통해 종이위에 프린트 된 잉크에 의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원근법의 원리나 스푸마토(회화에서 색깔과 색깔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하는 음영법)기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진은 그보다 크고, 깊이 있고, 엄습해온다. 작품에 대해 침묵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다.

김보섭 작가는 <연평도의 바위> 연작을 통해 단순한 기록자에서 존재의 보편적인 의미와 에너지를 표현해내는 예술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과정은 수평적 변환(translation)이자 수직적 변용(transformation)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에는 전재가 필요하다. 수평적 변환은 다큐멘터리사진과 예술사진을 사진 장르안의 성격이 다른 하위 장르라고 보았을 때 하의 장르간의 변환이 이루어졌다고 본 것이다. 이때는 수준의 차이를 논할 수 없다. 한편, 동종의 다큐멘터리사진 안에서도 직적인 수준차이가 존재하고 예술사진 안에서도 질적인 수준차이는 존재한다. 수평과 수직의 이동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미 일정수준에 다다른 김보섭 작가의 다큐멘터리사진이

<연평도의 바위>연작에 와서 기록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또 다른 의미의 예술성을 획득한 것으로 파악했다.

연평도의 바위를 찍은 그의 사진은 생태적, 역사적 자료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흑과 백의 무채색의 변주는 조형적인 가치를 내재하고 있으면서 정신적인 영역을 건드린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위계 안에서도 상당한 수준을 달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존재의 모든 영역에 있어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마치 개체의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발달이론과 같이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 문화, 의식, 역사, 그리고 예술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하위수준과 상위수준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좀 더 명확히 한다면 수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높고 낮음 두 수준이라기보다 계단이나 사다리와 같은 다양한 위계를 상징한 것이다. 수평적 차이는 따로 논하지 않아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으므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나, 높고 낮음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부정적인 권위주의의 잔재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농후한 현대문화의 무차별적 다양성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자세한 설명을 하게 되었다.

 

작품의 변환과 변용의 괴정에서 김보섭 작가의 자의식이 특별히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는 현대미술이론의 성격과는 동떨어진 부분이다. 묵묵히 기록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는 여정에서 획득하게 된 예술적 성취는 사실 동양적 맥락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그리고 동양전통에서 장인적 수련을 포함한 예술과 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과학적 사진 기술에 충실하여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무명의 장인과 같은 태도로 일관한 김보섭의 작업은 <연평도의 바위>에 이르러 스스로 그러한자연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카메라를 들고 외부 대상을 말 그대로 취하는(take) 행위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심신의 과정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사진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지나갔지만, 세상에 선보이는 많은 작품들을 예술적 성취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이 예술작품이 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추상적인 담론과 학문적인 탐구보다 개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과 만날 때 유의미한 질문이 될 것이다. 김보섭의 <연평도의 바위>는 한국 현대 사진의 맥락을 포함한 한국 현대 미술의 지형 안에서 명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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