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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ets_박형근 개인전_낮달 daytime moon 2016. 9. 29 ~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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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미술관 기획전2016_part 2_두 개의 개인전

The Poets

박형근_낮달 daytime moon

2016. 9. 29 ~ 12. 11


이상원미술관은 2016년 가을 새로운 기획전으로 두 개의 사진전을 준비했습니다.

'시인들'이라는 큰 제목 아래 김보섭 작가와 박형근 작가의 전시회입니다.

박형근 작가는 실제 풍경 또는 대상을 소재로 하여 미스테리한 뉘앙스의 사진작품을 제작해왔습니다.

숲, 호수, 건물 등 박형근 작가가 주목하는 공간은 실재의 공간이지만 마치 현실에 있음직한 비현실적인 통로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외부 풍경에 약간씩 작가의 의도가 내포된 소품을 삽입하여 촬영하기도 합니다.

탐색가, 몽상가, 그리고 상상의 차원을 열어가는 시인의 감성을 표현합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근원과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속의 장소는 마치 앨리스가 빠져버린 토끼굴 같기도 합니다.

 

'낮달은 형체와 물성도 갖지 못한 소소한 것이지만, 간혹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천공 너머의 우주를 바라보도록 해주었다.. '

                                                                                                                                                       -박형근-

 

박형근 작가는 보이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사진작업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표현합니다.

전시를 통해 박형근의 사진 작품이 선사하는 패러독스의 세계를 만나보기를 바랍니다.

 

 

박형근_낮달

 

이 사진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미술에서 사진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역동성이 아닐까싶다. 2016년 현재 사진은 큰 의심 없이 고습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은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전시라는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된다. 사진은 미술 비평의 대상이 된다. 사진 전문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존재한다.

 

사진의 역사를 단순화시켜 살펴보면 19세기 전반에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기술의 발달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탤벗, 프랑스의 다게르가 공식적으로 사진술의 발명을 발표하였으나,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실험과 발명을 했다는 기술(記述)이 존재한다.

 

사진술의 등장이 전통 회화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였다. 서양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이후 회화의 가장 큰 특성이자 소명은 눈에 보이는 외부의 장면을 충실하게 그려내는 것이었다. 원근법은 재현이라는 회화의 목적을 위한 과학적인 토대였다. 신화나 종교의 내용이라도 마치 생생히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꾸며내는 것이 회화가 추구해야 할 목표였다. 사람들은 회화를 통해 신성과 인간성, 역사적 교훈,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의도된 정치적 효과까지 발휘되기를 요구했다. 회화는 외부세계를 충실히 모방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생각과 염원을 반영하는 이미지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업과 함께 도시가 발달하는 근대가 시작되면서 시대정신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발맞추어 성장하는 과학의 발달은 생활문화 전반을 넘어 순수예술의 의미와 형식에 변화를 초래했다. 변화된 시대의 가치관은 개인주의와 합리성, 실용성을 추구하였다. 논란의 여지없이 사진술은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한 재현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전통 회화는 존재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했다. 추상미술과 회화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의 시발점에 사진술의 등장이 끼친 영향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런데 외부장면을 정확하게 포착하기만 할 뿐 아니라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한 사진은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요소로 인해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진이 등장한 19세기는 사진이 어느 정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의 논쟁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사진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 가록에 유용한 도구 (다큐멘터리 사진과 아카이브의 자료)가 되었고, 상업분야에서도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광고사진). 대중의 일상에는 점점 더 밀착되고 있다(가족사진, 여행사진, 일상의 기록).

이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유럽의 미술대학에 사진학과가 개설되었고 사진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의 전시형태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전시되는 사진의 크기가 대형 캔버스처럼 커지고, 종이위에 인화된 사진으로 그치지 않고 뒤편에 라이트 박스를 설치하여 발광 효과를 낸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액자대신 디아섹(Diasec: 사진을 아크릴과 알루미늄 판넬 사이에 놓고 압축하여 코팅하는 방법)방법으로 사진을 고정시킴으로써 견고하면서도 현대적인 재료의 느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전시하는 방법상의 변화는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 사진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도전에 비하면 단순한 편이다. 사진이란 매체는 사진술이 발명된 후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외부 정경을 자동적으로 포착하는 기록적이고 기술적이고 유용한 도구 일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보여주었다. 본다는 행위와 보여 진다는 것의 심리학적 의미를 찾거나, 영화장르처럼 이야기적 요소를 첨가하여 (변장이나 연극적인 미장센을 꾸며놓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회학적 문제를 제기하였다. 노출시간을 극단적으로 조정하거나, 사진이 찍히는 장소에 특정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실용적이거나 심미적인 효과 이외의 음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진은 출발에서부터 현재까지 쓰임에 있어 짧은 기간 동안 기존의 문화예술과 생활양식의 다양한 요소에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모든 조형예술의 기본적인 요소는 아름다운 형식과 가치를 담은 내용의 조화이다.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예술사진이라 불리는 작품에 이 요소가 존재하는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특징이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존재하게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가? 현대미술은 이미 재료와 표현방법에 있어서 한계를 두지 않는다. 다가오는 미래에 과학이 어떤 기술을 예술의 표현수단으로 제시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사진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이후에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고, 21세기 문화는 유래 없이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 ‘감성과 이성과 자각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예술로부터 얻기 원한다. 세세한 내용은 개인의 취향과 문화적 토대에 따라 변형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그렇다.

 

2016년 하반기에 이상원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사진전은 흥미로운 대조와 더불어 시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두 개의 개인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보섭 작가와 박형근 작가는 1990년대부터 개인전을 열었다. 김보섭 작가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속하였고, 박형근 작가는 처음부터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전시의 출판형태는 겉보기에 큰 차이가 없다. 김보섭 작가는 인천이라는 지역에 속한 사람과 공간을 기록하는 가록자로서의 소명을 지니고 장인적인 작업으로 꾸준히 작품을 쌓아갔다. 반면 박형근 작가는 자신의 내적질문을 예술행위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사진으로 진행하였다.

사진이 예술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미술계 종사자를 포함하여 심미안을 갖춘 대중, 그리고 순수예술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대중 모두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동시에 사진작품을 제작하는 사진가는 새로움을 제공하면서도 공감의 대상으로서 가치 있는 작품을 보여주어야 한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진작업에 몰두해 온 두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세계는 독창적이고 의미 있다. [이상원미술관 학예연구실 2016]

 

박형근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은 대부분 텐슬리스tenseless 연작이고, 이번 개인전의 제목과 같은 낮달daytime moon 이 한 점 속해있다. 이 작품들은 2007년에서 2015년에 걸쳐 제작된 작품이다. 작품을 쉽게 설명하자면 풍경사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상투적인 의미의 풍경이 아니다.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쩌면 숲, 호수, 마당, 집 등의 특정장소로 말미암은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작가 내부에 존재하는 무엇이 작가가 조우한 장면에 외부요소를 삽입했을 때 공명을 했을 것이다. 또는 그것은 마주친 풍경에서 어떤 종류의 공기와 습기와 조도와 선명도가 맞아 떨어졌던 그 순간에 드러났다.

 

박형근 작가의 작품은 매우 밀도 높은 세부를 지녔다. 충분히 시각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작품 전체의 미묘한 뉘앙스이다. 그것은 미스테리하다거나, 그로테스크하다거나, 음습하고, 공포스럽다는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신비롭고 매혹적이기도 하다. 마치 크던 작던 어떤 비밀에 접근해갈 때의 감흥을 느끼게 한다.

 

시제가 없는을 뜻하는 tenseless라는 제목이나, 낮달이라는 표현은 작품만큼이나 뭐라 말할 수 없는 불분명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러한 의미의 단어로는 정묘(精妙) subtle-미묘함. 감지하기 힘든 상태를 일컬음이 있다. 작가가 피사체로 직접 등장한 작품 낮달 daytime moon’은 우화적인 연출을 시도한 작품이다. ‘이라는 개념과 이라는 개념이 공존하며 제 3의 시간 또는 차원을 상상하게 만든다.

 

시제가 없다라는 개념은 시공간에 뿌리박고 존재하는 인간의 경험으로는 완전히 체득할 수 없는 개념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무시간의 상태를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러한 3의 영역을 종교나 예술을 통해서 다루어왔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따져 들어서는 해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정묘(精妙)하다. 마치 인간존재가 무엇이냐라는 근본적이면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물음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지경과 같다. 태어나기 전 인간은 어디에 있었고, 죽은 후 인간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나타났다 소멸되는 것인지. 몸과 마음 중에 어떤 것이 인간의 본질인지. 그 둘의 분리할 수 없는 혼합체인 인간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

 

박형근 작가의 탐구는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우주라는 광대한 스케일의 배경 속에서 인간은 미약한 신체를 타고났지만 의식으로는 모든 존재의 기원과 본질을 사색하는 역설적인 상태에 있다.

 

근대세계가 도래하고 현대로 진입하면서 인류는 원시시대와 부족국가를 거쳐 과학의 발달과 합리적 이성을 쟁취했다. 그런데 박형근의 작품은 근대세계의 최상위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합리성과학적 실증주의를 무시한다.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은 다만 근대 이전의 무질서하고 신화적인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우화적인 표현은 객관적인 지각과 인식이 바로서지 못한 유아기의 상태를 동경하는 것일까? 꿈에서나 봄직한 관경은 인간 이성의 빛으로 비추어야 그 난해함이 풀리는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일까?

 

작품의 어둡고 불안정해 보이는 뉘앙스로 인해 작가가 느끼는 두려움과 헤맴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과학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진의 특성상 작가가 그저 충동에 휩싸여 전혀 모르는 것을 배설하듯 쏟아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많은 순간을 기다리고 반복하여 완성도 높은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내기까지 충동을 넘어선 신뢰와 확신이 그의 곁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다른 말로 직관또는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2009년쯤 되는 시기 작가노트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곳은 그래서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무척 어려운 곳이다. 보지 않고 생각을 멈출 때야 비로소 더 많이 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그때가 차라리 나았을지 모른다. 알 수 없는 무엇을 보기 시작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알 수 없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지난한 여행을 이제야 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한다면, 성인이 되어 내린 판단과 해석은 무질서와 혼란을 벗어나게 하는 바람직한 성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작가는 성장의 끝에서 다시금 알 수 없음을 지향하게 되었는가. 아마도 그것은 돌아가는 길이라기보다 더욱 성장하는 방향일 것이다. 분별하고 해석하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해체하거나 뒤섞어버리는 태도로 변화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어릴 때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아는 자가 선택한 모름의 길은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은 곳을 지향한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더 깊은 을 위한 것이다. 망막에 수동적으로 비치는 것, 카메라에 찍힌 시각적인 것을 넘으려는 것이다. 합리성을 초월하는 차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나쳐온 사다리의 형편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설렘과 불안의 마음을 가지고 탐색한다. 자기존재의 수직적 변용(transformation)을 시도하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이다. 박형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비밀스럽고 불안한 기운은 미지의 곳을 항해하는 탐구자, 철학자, 시인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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