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미술관








최은경 개인전 Apples on the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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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개인전 Apples on the Ground 

2017 9, 28 ~ 2018 1. 14(1. 28 까지 연장)
이상원미술관 2층 전시장, 야외 전시장

 

'대지 위의 사과'는 2017년 가을과 겨울사이 이상원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최은경 작가의 전시 제목입니다. 제목에 드러나듯이 최은경 작가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과일인 사과를 다양한 재료의 작품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대표작품은 이상원미술관 외부에 설치되는 대형 녹색 사과입니다.
초록의 잔디,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숲을 배경으로 하여 직경 2m, 1.5m로 제작된 녹색 사과는 흔하고 평범한 사과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끕니다.
전시장에서는 투명아크릴에 전사된 맑은 녹색 사과 작품과 색다른 질감과 색상으로 표현된 세라믹 사과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사과'는 다양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과일입니다. 그러나 전시를 통해 최은경 작가가 소통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대지 위에 놓인 커다란 사과를 마주하며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고도 싱그러운 행복감을 느끼길 원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과 한 알이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감을 안겨주듯 삶 구석구석 널려있는 평범한 것들의 가치를 음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치 '어머니', '맑은 공기', '순한 물'과 같이 평범하면서도 늘 베푸는 것들의 가치를 깨달아 알아 우리 또한 녹색 사과의 겸손한 빛깔에 물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왜 특별해지려고 하는가?

 

평범하게 사는 일이 소중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삶의 태도인지 모르는 우리들에게 사과는 평범함의 가치를 조용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는 오브제이다.’

‘For those who do not know how to live a normal life is precious but difficult, an apple is an object that quietly tells us the value of the ordinary, as a symbol of modesty.'

 

최은경 작가는 오랜 시간동안 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은 인간의 지성과 그 지성이 만든 문명을 상징하는 것 이었고, 그와 대비되는 소재로는 야생동물과 자연, 어머니(모성)가 있었다. 최근에는 Gate()를 형상화 하여 이상향으로 나아가고가 하는 지향을 표현했다.’이라는 소재를 다루는데 있어 최은경 작가의 작품은 문명 비판적이었다. 작품의 결과물은 단순 했으며 인간의 존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여 작품을 대면하는 이로 하여금 침묵 속에서 숙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2017년 발표하는 작품은 사과 An Apple’이다 그것도 붉은색이 아닌 연녹색의 사과이다. 평범한 사물을 단순화 시키거나, 크기에 변형을 주어 제시하는 환경조각 작품들처럼 최은경의 연녹색 사과도 거대한 크기로 땅 위에 놓여있다. 최은경 작가는 사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처음에는 단순한 의도로 구상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이 위오를 건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커다란 사과를 제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해지려는 욕망으로 인한 지나친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간략한 작가 노트에 적은 내용의 일부는 앞의 인용문과 같다.

 

최은경 작가는 사과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특별해 지려고 하는가?’ 그리고 평번하게 사는 일이 어렵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삶에 있어서 최고 또는 최선의 것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비추어 위릐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질문은 나 자신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여 고민해 볼 만한 화두이다. 또한 예술과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도 주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나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지적인 탐색을 넘어 정서적 고통이 동반되기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비통함이었다.

 

아래 또 하나의 글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물건으로 변형시켜, 삶은 소유물에 종속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산다고 하는 것은 갖는다고 하는 것에 지배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서구인은 감정을 경험할 수 없는 정신 분열증의 상태 속에 놓여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안하고 우울하며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행복이라든가, 개인주의라든가, 주도성이라든가 하는 말만의 목표를 내세우고 있을 뿐, 실제로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이다. ‘삶의 목적과 그들의 이러한 고전 분투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그들은 매우 당황할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은 즐기기 위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산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도 자기들의 삶의 목적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안과 고독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소망밖엔 아무런 목적도 없다. 에리히 프롬과 정신분석

 

1960년대 에리히 프롬이 지적한 진정한 목적을 상실한 서구인의 문제는 2017년 세계인이 직면한 상태와 일치한다.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경험한 인간 문명의 잔혹함을 반성할 새도 없이 빠르게 산업화, 상업화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분석한 그의 글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도 빛나는 통찰로 현재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분투하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에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수 천 년 역사를 지닌 동서양 종교와 20세기 들어 발전하게 된 정신분석학은 인간에 대해 비슷한 내용의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인간의 정신(또는 마음)은 일상적인 상태의 의식과 일상적인 상태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무의식의 두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통 라고 일컫는 자아는 일상적인 상태의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짜 자아라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특별함으로 치장하고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가짜 자아의 공허함, 불안감,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짜 자아와 대비되는 진정한 자아는 겉으로 드러난 의식보다 무의식(또는 내면)안네 내재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비극적인 인간의 상황에 대해 우연적 존재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 말인 즉슨, 인간은 태어남에 대한 선택권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 나의 태생을 원망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삶에 대한 거부(자살)를 선택함으로써 최고의 저항을 하기도 한다. 씩씩하고 활기차게 삶을 살아나가면서 삶의 목적은 과정을 충실히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하지만 극도의 실패를 맛보고 어떤 위로조차 없을 때, 반면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한 뒤에도 충만감이 없을 때는 좌절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는 공포를 잊기 위해 특별함을 추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지도 모른다. ‘특별함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그 내용은 다양하다. 은근히 또는 공공연하게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있다. 더 나은 육체, 명예나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들이다. 다른 한편 사회적 지지를 받는 것들도 있다. 지성과 덕망과 정의실현이나 사회참여나 환경보호,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의 특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 모두가 진정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의 불안을 잊고자 하는 대리충족의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심리학적 용어로 소외이며 서구종교에서 말하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또는 원죄이며 동양종교에서 말하는 미망에 사로잡힌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 대해서조차도 부정적이 되어야 하는가? 탐욕과 게으름, 중독과 집착이 아닌 선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행동마저도 특별한 존재가 되려는 가짜자아의 속임수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정신분석가의 도움을 받아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거나, 명상이나 수련을 함으로써 어떤 욕망도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단련한 뒤에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급진적인 결론이 아니라면, 선해 보이건 명백하게 부정적인 욕망으로 보이건 겉으로 보이는 행동의 배후에 내재된 동기부터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그 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지헤와 심리학을 통해 발견한 이간 정신 구조를 탐구한 결론은 한 목소리로 내면의 참된 자아와 통합되는 길을 지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이다.

 

우리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되라고 끊임없이 촉구하는 현대문화의 비틀린 지향 속에서 그 흐름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에는 참 된 자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내면안에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며 충분히 아름다운 자기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를 한 인간이 내면의 자아와 일치 된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그는well-being평안한 상태의 회복이라고 해석했으며 그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해보았다.

 

그때 그는 어떻게 색채를 보며, 돌고 있는 공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경험을 처음으로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는 단지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는데, 어떻게 그의 귀가 음악에로 완전히 열려져 있는가 하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된 것을 느낄 것이며, 자신의 분리된 개인적 자아가 고집해야 하고, 키워야 하고, 쌓아올려야 할 어떤 것이라고 여겨 왔던 미망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 자기 자신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자신을 소유함으로써 인생의 해답을 추구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과 정신분석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 자체가 힘겨우므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함 사람 한 사람의 노고가 크고, 가치가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고통의 바다라고 표현되는 삶에 대한 얄팍한 위안의 의미만 지닐 뿐이다. 사과 한 알의 평범함의 가치란 특별한 존재가 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누릴 수 있다. 우리는 가끔씩 그런 상태에 이른다. 순진무구한 아기의 눈동자를 보거나, 너른 대양을 마주하여 잠시 일상을 잊을 때. 내일이면 사라질 만개한 꽃잎을 마주하고, 창공으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새를 바라볼 때. 순간에 아주 잠시라도 내 몸과 내 역할과 내 소유물들을 내려놓고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나와 결합하는 것은 아닐까?

 

지성적 지식은 그것이 정서적 지식일 때만 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시피노자의 명제처럼 예술 작품은 감동이나 위안이라는 정서적 효과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평범한 연녹색 사과, 그 커다란 겸손함으로 말미암아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가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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